상대방이 기대하는 바를 명확하게 안다는 것은 | 10월 5일의 기록
들어가기 전
어느덧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이제는 차가운 것보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찾는 걸 보니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오늘은 낮시간에 하루 종일 잠자고 TV만 하염없이 보다가 (요즘은 넷플릭스의 '셰프의 테이블' 피자 편을 챙겨보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곰이 될 것 같아 집 앞 카페에 나와서 노트북을 켰습니다. 저번에 첫 글을 쓸 때는 '매일 밤 자기 전에 짧게라도 글을 쓰고 자야지!' 다짐했었는데.. 의지만으로 해결되는 결심이 아니라는 것을 곧바로 깨달았습니다. 대신 오늘처럼 한가한 날에 퇴근길 3000번 버스를 기다리면서 메모장에 적은 내용들, 공부하면서 메모지에 적은 내용들을 되돌아보며 회고를 해보려고 합니다.
내가 해야 했던 일
제가 맡은 일은 백오피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좀 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입니다. 정책을 만들고, 그 정책을 UI에 적절하게 녹여내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 대표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지금은 이런 문제가 있고, 그걸 이렇게 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이 태스크를 너에게 맡기는 거다 등등.. 정신없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인 뒤 제가 해야 할 일은 브랜드 데이터 모델링, 즉 수집한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필요한 칼럼을 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문제의 주요 이해관계자인 백오피스 사람들은 '의사결정 해야 할 것이 많은 태스크'를 처리하는 것을 어려워했습니다. 그러한 종류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그들은 자신의 판단 하에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부담스러워했고, 피했습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저는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내는 것'을 도와주는 데이터와 도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백오피스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하고, 아이템을 조합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그 과정에서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칼럼들을 브랜드 데이터 모델링 테이블에 추가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사고가 막혔습니다. 왜 이걸 하고 있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문제의 해결방안을 수행하는 과정에는 브랜드 데이터를 모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됐든 간에 저는 그 일을 해야 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은 브랜드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수집하고 관리하기 위한 테이블을 만드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머리를 쥐어뜯고 의문을 느끼며 오후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 그 사람은 무엇을 기대하고 있나요?
혼자서 갈팡질팡, 열심히 삽질의 시간을 보낸 뒤 피드백을 받으면서 '지금 당장 고민하지 않아도 될 부분을 생각하느라 너무 멀리까지 갔다' 는 말을 들었습니다. 친절한 대표님은 반복해서 '우리가 이 태스크를 하는 목적'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ㅠㅠ). 사실 아직도 기억하는 건,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떠오르는 의문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에 이 태스크가 정말 적절한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대표님의 새로운 한 마디 '이 일을 하면서 바라는 건 백오피스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 환경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일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를 들었습니다. 순간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 제가 대표님과 다르게 생각하고, 주어진 태스크에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왜 그렇게 열심히 삽질을 했을까요. '서로가 기대하는 모습'이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대표님이 기대하는 바를 명확하게 캐치하기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기대한 브랜드 데이터 모델링 결과는 사람들이 제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토대로 '더 쉽게 정보를 브라우징하고, 그것들은 결합해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수집하는 브랜드 데이터는 사람들이 직접 활용할 재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표님이 기대하는 모습은 이와 달랐습니다. 수집한 브랜드 데이터는 사람들이 활용할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들이 일할 환경을 구축할 재료였습니다. 환경 구축을 위해 데이터를 수집해야 했고, 제가 해야 할 일은 그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준비 과정과도 같았습니다.
신기했습니다. 문제상황의 원인도 알고 있고, 해결방법도 주어졌는데, 그 일의 종착지를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로 상황을 인식하는 모습 자체가 송두리째 바뀔 수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커뮤니케이션을 잘해야 하는 이유야
사실 남 탓은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스크를 할당할 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는 A다. A를 해결하기 위해서 B를 할 것이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한 문제 A를 해결하기 위해서 B를 해야 한다. 이 B를 수행하고 나면 우리는 C의 상황이 될 것이다."라고 설명했으면 좋았지 않겠느냐, 하고 말이죠. 그런데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면서 생각해보길, 후자와 같은 말을 듣기 위해서는 오히려 제가 대표님께 적절한 질문을 던졌어야 했습니다. 그냥 듣기만 하지 않고, 생각을 동기화하기 위한 위한 질문들을 말입니다.
상대방은 제가 필요로 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속속들이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온전하게 알려줄 수 없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라는 생각이 들면 상대방의 정보 전달은 끝납니다. 하지만 정보를 전달받는 사람은 상대방이 전달한 정보 만으로 '생각의 동기화'를 성공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전달받은 사람은 띄엄띄엄 끊긴 정보들을 기반으로 아예 다른 세상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해야 합니다. 생각의 싱크 sync를 맞춰가야 합니다.
우리 교수님은 '중저음을 내라'는 소리만 하지 중저음을 내는 방법은 안 알려줘
저는 질문을 잘 하는 것이 좋은 커뮤니케이션으로 가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앞으로 어떤 일을 할 때는 그 일이 가져올 변화, 기대효과가 무엇인지 물어봐야겠다"는 새로운 기준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정보를 분명하게 알면 출발지와 목적지를 분명하게 알게 되는 셈이니, 모로 가도(아무리 삽질을 해도) 서울로는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M을 꿈꾸는 사람들은 '커뮤니케이션을 잘해야 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듣게 됩니다. 그놈의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건지는 그 누구도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아, 제가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좋은 글들을 열심히 찾아보지 않은 탓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어쩌면 좋은 커뮤니케이션의 기준은 경험을 통해 각자가 만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 만난 대학 친구가 자기가 듣고있는 수업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발표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는 수업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말하길, 그 수업의 교수님은 A를 하라고만 말하지, 그 A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는 않는다며 수업 내용에 실망했다고 했습니다. 그 심정이 이해됐습니다. 제가 앞에서 겪은 상황은 '문제와 출발지점만 알고 도착지점은 몰랐던 것'이었다면, 친구의 상황은 '문제와 도착지점은 알지만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 친구는 교수님께 어떤 질문을 하면 좋았을까요?
우리는 어떤 일을 하던간에 '알잘딱깔센'이 되어야 합니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찾아내 품어야 합니다. 저는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저렴한 방법이 '질문하기'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을 잘하기 위해서는 현재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내가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는 바른 태도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필요한 정보의 종류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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