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저질체력 사이 그 어딘가 | 9월 21일부터 10월 4일까지의 기록

2022. 10. 4. 16:32

들어가기 전

 

10월 4일, PM 부트캠프가 끝나고 약 2주 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많다면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문득 버스를 타며 생각하길 기록하지 않으면 이 모든 부산함이 무의미해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싫은 마음을 붙들고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무수히 일들이 저를 찾아올 것을 압니다. 단조로운 일상과는 거리가 멀 것을 알기에 설레지만 한편으론 벌써부터 피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미 공은 던져졌으니 일단 달려 나가 볼 생각입니다. 오늘은 그동안 있었던 몇 가지 사건들에 대해 적어보며 회고해보려고 합니다. 아마 10년 뒤 내가 이 글을 읽으면 '으이그 저 패기만 넘치는 놈'이라고 욕할 것입니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의 말을 들어라

 

캠프를 종료한 이후 가장 큰 변화이면서도 변하지 않은 점이라면 기업 협업에 참여한 회사 사무실에 계속해서 나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먼저 출국 이전까지 남아서 일을 배우고 싶다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조건을 유지한 채로 12월 초중순까지 출근 아닌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초반에는 월화수목금 매일매일 사무실에 나갈 생각이었습니다. 화목은 과외수업이 있기 때문에 피곤하면 재택을 할 생각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도 기업 협업으로 몸과 마음이 지쳤음에도 불구하고, 실무 경험에 대한 열정에 눈이 뒤집혔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그놈의 이상한 완벽욕과 인정욕 때문에 어떤 일을 맡으면 '제대로' 해내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 피곤한 성격도 이런 의욕 넘치는 결정에 한몫을 한 것 같습니다. 

 

결심을 아버지에게 말씀드린 그날 밤 호되게 야단맞았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가 보인 태도에 대해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나름대로 내린 결정에 대해 아버지는 시원찮은 반응이셨습니다. 제 발로 고생하겠다는 딸래미 걱정이 안 되겠느냐만, 그래도 내심 속상했던 저는 왜 나의 결정을 지지해주지 않느냐고 투덜댔습니다. 아버지는 "너는 지금 해야 할 일이 산더미만큼 쌓여있다. 그리고 또 그 전에는 캠프 끝난 뒤에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라고 해놓고 왜 그런 결정을 한 것이냐"라고 하셨습니다. 그에 대고 저는 "직접 실무를 옆에서 볼 기회가 (내년에 출국해야 하는 내 상황에서는) 흔하지 않다. 이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할 때는 제대로 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했죠. 제 대꾸에 돌아온 말은 "너는 네 문제의 본질을 바라보고 있지 않아"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말이 뭔지도 이해할 수 없었고 기분 나쁘기만 한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김 식히고 천천히 들어보니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저를 걱정하며 언성을 높이던 아버지의 말을 제 나름대로 해석해본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장에 나가 직접 '내 일을' 해본다는 것은 물론 저에게 도움이 되는 경험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내년 1월에 교환학생 출국을 앞둔 저에게 남은 3개월의 시간을 100% 쏟을 만큼 중요한 일일까요? 아닐겁니다. 홀로 처음 외국을 나가게 된 저는 많은 에너지를 들여 유학을 준비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어디를 언제 가야할지 정해야 합니다. 거주 허가증을 신청하고 기숙사도 신청하고 교통편도 예약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그냥 하면 되지 않냐' 할 수 있겠지만 이것들은 분명히 시간과 노력을 써야지 가능한 일들입니다. 게다가 저는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마다 과외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유학 준비를 하고 과외를 하면서 판교로 매일 왕복 3시간 출퇴근을 하겠다? 아버지 눈에는 딸내미가 눈에 뵈는 것 없이 돌진하는 황소(실제로 그렇게 말씀하신..)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는 무수히 많은 일들이 병렬적으로 발생하고 사라집니다. 우리는 그들 간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저한테는 그런 연습이 부족했습니다. 어떤 일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 '내가 가진 에너지의 100%를 투입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태도는 고치지 않으면 언젠가 독이 되어 스스로를 해쳤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셨을 겁니다. '너에게 남은 미래는 아직 많고 당장에 해야 할 일들은 그것 외에도 무수히 많다. 너의 에너지를 한 곳에서만 쏟으려고만 하지 말아라'하고 말이죠. 비록 그 메시지의 표현이 '넌 지금 돌진하는 황소 같다'였지만요.

 

요즘 젊은이들은 손해 보려고 하지를 않아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일주일의 모든 날을 실무 경험에 쏟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뒤에 남은 것은 이 생각을 회사 대표님에게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막상 말하려고 보니 특유의 망할 인정 욕구 때문에 무서워졌습니다. '내가 이 말을 함으로써 나에게 실망하면 어쩌지?'따위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최대한 빨리 말하고 털어내는 게 좋다고 생각해 그날 오후 바로 일대일 면담을 통해 월수금만 사무실에 출근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해피엔딩, 화목은 off 하는 걸로 하고 월수금에만 출근하기로 했습니다. 면담을 하게 된 김에 다른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여러 말들 중 제 마음의 짐을 덜어내준 말은 '나는 너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다'였습니다. 곧 떠날 일개 휴학생에게 회사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일을 맡기는 회사는 '곧 망할 회사' 라며, 하는 일에 너무 부담을 가지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 신기한 건 전날 아버지도 그와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왜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에 안심했을까요? 생각해보면 저는 제가 맡은 일에 지나치게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사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딱 한 번 가본 마켓컬리 물류창고 알바에서도 사수 매니저님께 '여태껏 내가 본 알바생들 중 제일 열심히 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요. 그 당시에는 뿌듯했는데, 생각해보면 좀 호구같이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소제목을 '요즘 젊은이들은 손해 보려고 하지를 않아'로 단 이유에는 이 '호구 같은' 책임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위해서입니다. 주어진 보상에 비해 열심히 하는 것은 호구같은 짓일까요? 그러면 어느 정도의 책임감과 열정을 가지고 일해야 호구 같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기준만 있을 뿐입니다. 막히면 편도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사무실을 출퇴근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그곳에서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월수금만 출근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제가 가진 에너지 중 그만큼은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대학생이고, 스스로 용돈을 벌고 있고, 내년에 출국을 앞두고 있다는 특수한 상황이 반영된 결정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과 결과에 대한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돈과 시간입니다. 기준과 믿음이 없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위태로울까요. 자신의 시간당 가치를 최저시급에 맞춰 계산하며 '손해보고 살지 말라'라고 외치는 삶은 조금 슬프게 들립니다. 나쁜 게 아닙니다. 제가 그러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하지만 매번 흔들립니다. 내가 하는 이 일의 끝에 '그에 합당한 보상이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도대체 그 '합당한 보상'이 뭔지에 대해 적절한 대답도 하지 못하면서 말이죠. 하다 보니 이야기가 딴 길로 샌 것 같네요. 다시 돌아와서, 주어진 보상만큼의 열정과 노력을 쏟는 삶은 저의 삶의 태도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숲을 보는 연습

 

저는 만족감을 느끼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돈이 아니라 하는 일에 만족을 느끼고, 나의 능력으로 하여금 가족과 주변을 안심시키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장은 아닐지라도 훗날에는 제가 느끼는 만족감 끝에는 만족스러운 보수(!) 도 따라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미래를 위해, 저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비록 그게 엉덩이 아프게 출퇴근 버스를 타고, 머리 아프게 정책을 생각해내고, 목청 높이면서 유리함수를 가르치는 것일지라도요.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지 않게끔 경험하고 느끼며 배운 점들을 남김없이 기록할 것입니다. 그것을 양분 삼아 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열정을 균형 잡힌 시각 위에 두고 다루는 연습을 할 것입니다. 앞뒤 생각하지 않는 열정은 금세 꺼지고 맙니다. 현재 처한 상황, 체력, 그릇을 스스로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냉정하게 파악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비록 지금은 그릇이 작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양이 많지 않지만, 계속해서 늘려나갈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은 불편하고 고통스럽겠지만요. 천천히 늘려나가면 될 일입니다.

 

오늘은 글이 좀 기네요. 앞으로는 생각하는 이야기의 단편을 끊임없이 기록해갈 생각입니다. 긴 글은 (나 포함) 아무도 읽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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