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1월 13일의 사진일기 | 스웨덴 웁살라 교환학생

2023. 1. 26. 01:45

스웨덴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넘었습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일들이 생기는데.. 기쁨에 벅차면서도 기가 쪽 빠집니다. 이런 일들을 꾸준히 기록해 미래의 제가 볼 수 있게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매일 일기를 쓰는 건 물 건너 간 거 같고, 이렇게 공부가 하기 싫을 때 한 번씩 사진첩을 넘겨보면서 그 당시의 생각과 감정들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스웨덴 알란다 공항에서 플록스타로 가는 길

스웨덴에 도착해 비행기에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떡해 여기 감성 너무너무너무 좋아' 였습니다. 기능에 충실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하면서도 깔끔한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아래 사진 속 하늘색 타일! 누가 공항 벽에 저런 아기자기한 타일을 붙이겠다는 깜찍한 생각을 했을까요?

게이트를 나오면 바로 보이는 장면 / 짐 찾으러 가는 길

공항에서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다른 비행기를 타고 하루 먼저 온 친구가 경유지에서 샀다며 튀르키예 딜라이트를 선물로 줬습니다. 나니아 연대기에서 본 이후로 줄곧 꼭 먹어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먹어보게 되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게 달지 않고 말랑한 젤리 같더라고요. 버스를 타서도 스웨덴에 도착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한국 밖에 혼자 나와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웰컴 키트랑 기숙사 키 받으러 학생회관(아마도?) 가는 길

관광객처럼 버스 타고 기숙사 가는 길 내내 창밖 사진만 찍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은 날이 흐려서 '아 운이 별로 안 좋다. 날씨 좋을 때 도착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습니다. 그냥 스웨덴 날씨가 평소에 우중충한 거였습니다. 여기는 툭하면 눈바람 비바람이 날리는 곳이더라고요. 그런데 다들 우산ㄹ을 쓰지 않습니다. 마침 저도 우산을 사기 귀찮았던지라 그냥 맞고 다녔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ㄹ방키 수령하고 기숙사(플록스타)로 이동하는 길

난생처음 받아본 열쇠키로 들어간 방은 당연히 휑했습니다. 한 10분 동안 스스로를 세뇌시키듯 '이 정도면 괜찮다'를 연신 되뇌었던 것 같습니다. 부러진 변기뚜껑을 보면서.. 분해당한 책상 스탠드를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정면은 기숙사뷰지만 조금만 몸을 틀면 평지와 나무가 보여서 좋았던..여러 종류의 뷰를 즐길 수 있으니까~

 

첫 난관을 마주한 순간

저는 현지에서 유심을 바로 살 생각으로 (배짱 좋게) 로밍을 하지 않았습니다. 기숙사에 짐을 두고 바로 근처 매점에 유심을 사러 갔죠. 순조롭게 구매를 하고 작동을 확인하려고 하는데..데이터와 통신이 되질 않았습니다. 칩은 인식하는데 기능이 작동하질 않더라고요. 매점 아저씨랑 30분은 이것저것 뒤적여도 소용없었습니다. 거기다 그 아저씨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다가.. 힘겹게 설정하고 온 이심마저 삭제해 버리고.. 제 핸드폰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깡통이 되어버렸습니다. 같이 온 친구들이랑 연락할 방법도 없어진 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터덜터덜 기숙사로 돌아갔습니다. '난 이제 어떻게 통신하지? 이심은 복구할 수 있나? 애들이랑 이케아 가기로 했는데 먼저 갔겠자? 첫날부터 원래 이렇게 문제가 생기나?' 등등의 생각을 하면서요. 기숙사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안경을 닦는데, 세상에 안경도 두 동강이 나버린 거 있죠? 그 순간 종교도 없으면서 신이 나한테 왜 이러시는 걸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고등학생 시절에 쓰던 여분의 안경이 있어서 그걸 썼습니다.

   그 뒤 정말 운이 좋게도 길거리에서 한국인 분들을 만나서 급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타지에서 들리는 한국어가 어찌 그렇게 반갑던지요. 그분들 덕분에 방에 공유기를 설치하고(공유기를 설치하기 위해 와이파이가 필요했던 아이러니..) 당장의 통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한 숨 돌린 저는 터덜터덜 소개받은 근처 마트에 가서 물과 치약과 비누와 빵을 샀습니다. 매장 직원분한테 물 어딨냐고 물어보니까 수돗물 마시면 된다고, 마트에서는 대부분 향 첨가된 물만 판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사실 알고 있었는데 몰랐다고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분에는 수돗물이 찝찝해서 그냥 시트러스 물 한 병을 샀습니다. 같이 산 빵은 생강 향이 나는 개노맛 빵이었습니다. 

   정말 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 뒤에 중고거래 때문에 만난 한국인 분에게 들은 설명 덕분에 핸드폰 통신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유심 문제는 그냥 매장 직원의 미숙함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3초 정도 화가 났지만 어차피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이고 매점으로 돌아가서 직원 멱살을 잡고 흔들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한 것에 감사하며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뒤에 연락이 닿은 친구랑 마트에 가서 세제, 저녁으로 먹을 인스턴트 스파게티 컵, 친구가 추천해준 초콜릿 그리고 기분전환을 위한 허브 두 개를 샀습니다. 마트에는 그동안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없던 식재료가 당연한 듯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죄다 사서 요리해 버리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둘러봤습니다. 한쪽에는 모형처럼 생긴 정말 반질반질한 사과들이 쌓여있었습니다. 아이폰 아이콘으로만 봤던 페루산 망고도 쌓여있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스파게티 컵은 폴란드 항공에서 간식으로 주던 게 생각나서 사봤는데 정말 개 노 맛이었습니다. 한 입 먹고 다 버렸습니다. 근데 놀라운 건 친구들이 산 맛이 더 훨씬 더 정말 엄청 많이 맛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맛없는 것에도 정도가 있다는 걸 그때 생생하게 경험했습니다.

 

기숙사 방에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두 번째 저녁식사 시도를 실패한 뒤 방으로 돌아온 저는 본능적으로 스팅의 Englishman in New York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바닥에 구르던 종이봉투를 하나 집어 각오 문구를 적어 벽에 붙였습니다. 다행히 울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아직까지 힘들어서 운 적은 없습니다. 조금은 마음이 강해졌다는 긍정적인 신호겠죠. 비행기 안에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은 덕분인 것 같습니다.

마음을 추스린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비누 포장지를 뜯고 하우싱 업체가 입주 선물로 준 스펀지로 방에 있던 철제 바구니를 닦는 것이었습니다. 박박박 닦다 보니 팔은 아팠지만 마음이 상쾌해졌습니다. 물건을 담을 깨끗한 통도 생겨 가져온 짐을 정리할 수도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니 그 당시에 피곤해서 가만히 있었다면 아마 서글픈 감정이 들었을 텐데, 계속 움직이고 청소해서 그런 감정이 생길 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비장한 각오로 화장실 가는 길 / 심신 안정을 위해 가장 먼저 꺼낸 인형친구들과 소품들

나름대로 그날의 청소와 정리를 마무리한 저는 전기장판과 담요를 덮고 잠을 잤습니다. 이불을 아직 못 사서 노숙하는 기분으로 보낸 밤이었습니다. 몸과 정신이 피로해서 시차고 뭐고 바로 곯아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참.. 도착 첫날부터 인상적인 하루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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